2010년 7월 17일 토요일

보통, 평등, 부자 미워, 반사회, 성공

집에 와서 심심해서 TV(IPTV다)를 켜보니, 여기서 TED.com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몇개 안 되지만...) 거기서 알렝 드 보통의 강연을 보았다. 주제는 얼추 성공이었다. 멋쟁이..
강연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성공은 질투하지 않는다. 원래 베이스가 다른 사람이다. 반면 '자신과 동질성이 높은 사람'의 성공은 질투한다. 비유를 빌리자면, 영국여왕 잘 사는 것은 질투하지 않지만, 동창들 잘 되는 건 뱃속이 꼬일 일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더 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후기의 신분제 흐지부지,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귀족이 없어졌다. 유럽과 달리 사회 계층이 모두 사라지고, 그야말로 모두 동창생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우고 자랐다. 하지만 수십년 뒤 누구는 성공했고, 누구는 못했다. 뱃속이 더 꼬일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 같은 베이스에서 시작한 것은, 배아픈 일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한세대 더 나아가 그 자수성가인의 2세를 보면 그저 배 아프기만 하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성공가도 달린다는 비난과 약간의 부러움이 터져 나온다. 한세대 더 나아가 자수성가인의 3세부터는 질투가 무뎌진다. '원래 잘 사는 사람'이라는 계급으로 나눠 질투가 약해진다. 동질성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위 사회적 성공자들에 대한 질투도 슬슬 무뎌질 것이다.

보통씨는 성과주의의 단점도 지적했다. 지금 세상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세상이란다. 누구나 창의적 아이디어와 열정, 그리고 차고(보통씨의 센스ㅋ)만 있으면 성공하는 세상이란다. 그렇다. 모두가 균등한 기회를 갖는 세상. 적어도 전제는 모두 같은 선상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저 사람보다 성공 못했다는 것은 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그래서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불운한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지금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 만나면 '실패자'라 부른다 하더라. '저 사람은 태생이 잘 났으니까...'라는 자기위로가 통하지 않는, '내가 무능하단 말이야?' 불편한 진실이 극도의 질투와 시기로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아침에 오다보니 첨 보는 거지 아저씨가 길에 앉아 있더라. 사람도 별로 없는 길이었고, 그 분 인상도 특히 험악해서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슬슬 피했다. 언제부터인가 거지나 노숙자가 피해야하는 대상이 되었다. 함부로 마주쳤다간 싸움이 난다. 보통씨의 말을 떠올려보니, 성과주의 사회가 이들이 반사회성을 띠게 만든 것 같다. 자기방어. 우리도 학창시절 찌질거렸다든가, 옛 애인에게 진상을 떨었다든가하는 자신의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을 배척하게 된다. 때문에 보통 그런 사람이 입을 놀리면 우린 그를 비난하여 그의 말의 공신력을 떨어트린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옛 애인을 비난하고 다니는 것이 그것 때문이 아닐까!). 소위 사회적 실패자들에게 비교적 성공자들의 적극적인 시선이 어떻게 비칠까. 내가 실패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입을 놀리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사람들 잘 되라고 적용한 성과주의가 이런 반사회성을 불러일으켰다니 놀라운 일이다.
극단적인 케이스만 말했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도 그런 반사회성이 없진 않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 더러운 세상에서 1등이 되려고 열심히 뛰는 것은 좋지만, 1등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제도나 철학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씨는 성공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더라. 성공에 대한 다른 기준. 나만의 기준. 남이 말하는 성공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성공. 지금 한창 취업시기를 앞두고 속물주의, 세속주의의 극을 달리는 나도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혼돈, 질서, 금융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에 박재희 휴넷&박재희 동양고전연구소장님의 '때론 혼돈속에 답이 있다'라는 글을 읽고 떠오른 점을 적은 것이다.

"장자의 응제왕 편에도 혼돈의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에 나오는 혼돈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구멍도 질서도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두 신은 인간처럼 7개의 구멍을 뚫어 혼돈에게 선물하려다가 결국 혼돈을 죽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인위와 질서보다 어쩌면 무질서와 모호성에서 더 큰 생명력을 찾을 수 있다는 장자의 역설의 철학을 보여준다. 잘 정리되고 짜인 인생의 길보다 무질서하지만 그 속에서 더 큰 자유와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시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파생상품 평가 모델은 통계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모델의 가장 큰 가정은 주가 등 이익 요소들이 랜덤하게, 즉 무질서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질서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이 때문에 질서를 만든다. 그래서 과거의 데이타를 보고 어떤 질서를 적용하여 내일을 예측하려 한다. 때문에 '오늘 올랐으니 내일은 내리겠지?', '오늘 올랐으니 내일은 오르겠지?' 같은 예측이 나오게 된다. -실제로 과거주가와 미래주가의 상관관계는 단기적으로는 -, 장기적으로는 +의 관계를 보인다고 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금융공학에 의존하여 투자를 하려면 세상이 혼돈에 빠져 있어야할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 없이 랜덤하게 움직이는 분자 운동처럼, 금융시장참여자들도 서로에게 신경 끊고 묵묵히 자기 소신껏 움직여야 모델이 들어맞으려나 보다.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조직]학회를 운영하면서

MARP라는 학회의 장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과거에 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나 혼자 장이 되어 조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령을 내렸다.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일하면서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재미가 있어야 창의적이 될 것 아닌가. 결국 아웃풋은 나 혼자 머릿속에서 나온걸로 채워져버렸다. 팀으로 움직인 의미가 없었다.

이번엔 좀 다르게 하고자, 중간 관리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케쥴 짜고 이것저것 주문하다보니.. 결국 예전에 한 짓을 되풀이하려하고 있더라. 마치 마에스트로라도 된 양 이리 주문 저리 주문.

이러면 안 되지- 자중하고, 조직원들에게 재량권을 주자. 조직원들이 열정을 갖고 자기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일을 처리해나갈 수 있도록. 난 방향만 주면 된다. 난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작품을 맏기면 된다.